▏센고쿠 시대

센고쿠 시대의 시작 연도와 종결 연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나,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의 후계 다툼과 연계되어 발발한 오닌의 난(應仁の亂)이 발발한 1467년부터, 무로마치 막부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의해 교토에서 추방된 1573년까지로 기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닌의 난으로 인해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은 극단적으로 약화되었고, 이는 각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大名)들과 무사 계급의 권력 투쟁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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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켄신

上杉謙信(うえすぎけんしん)

에치고노쿠니(越後国, 현재의 니가타현 일대)의 다이묘. 우에스기 가문에 입적되기 전의 이름은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로, 널리 통용되는 이름인 ‘켄신’은 출가 후 얻은 법명이다. 당대 에치고 일대를 통치했던 슈고다이묘(守護大名) 우에스기 사다자네(上杉定実)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무로마치 막부 제1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로부터 다이묘 대행을 명령받아 에치고를 통치하게 되었다.

가독을 상속받기 이전 린센지(林泉寺, 니가타현 죠에츠시)에 출가한 내력이 있으며,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제석천(帝釋天, 인도 신화의 ‘인드라’가 불교에 습합된 신격)의 직속 부하이자 4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 중, 북쪽을 수호한다고 여겨지는 비사문천(毘沙門天)에 대한 신앙이 깊어 자신을 ‘비사문천의 화신’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또한 전투에 쓰이는 깃발에 비(毘)자를 새기거나, 일반적인 비사문천 불상과 다른 모습을 지닌 ‘도로아시비샤몬텐(泥足毘沙門天)’이라는 불상을 직접 모시기도 했다.

카이노쿠니(甲斐国, 현재의 야마나시현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던 슈고다이묘 타케타 신겐(武田信玄)과는 평생에 걸친 경쟁 관계였으며, 특히 에치고와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곡창지대를 끼고 있는 카와나카지마(川中島) 일대에서 벌어진 5차례의 전투가 유명하다.

▏우에스기 가문 선정 명도 35선

上杉御手選三十五腰(うえすぎけおてえらびさんじゅうごよう)

우에스기 가문 소유의 도검들 중, 우에스기 켄신의 양자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에 의해 직접 선정된 35자루. 우에스기 켄신은 도검 수집을 즐겼으며, 그의 아들 우에스기 카게카츠 또한 도검 수집은 물론 감식에도 조예가 있었다.

高梨・小鳥遊(たかなし)

시나노노쿠니(信濃国, 현재의 나가노현 일대)를 발원지로 삼는 성씨. 제56대 세이와 천황(淸和天皇) 대에 신적강하하여 미나모토(源) 성씨를 받은 세이와 겐지(淸和源氏)의 분파인 ‘카와치 겐지(河内源氏)’ 이노우에 류(井上氏流)로부터 시작한다. 센고쿠 시대 이전까지는 시나노노쿠니 일대의 지방 호족으로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타카나시 마사모리(高梨政盛) 대에는 에치고 일대의 슈고다이(守護代, 지방관 대리직)를 역임하던 나가오 요시카게(長尾能景)가 이끄는 나가오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후 타카나시 마사모리의 손자 타카나시 마사요리(高梨政頼) 대에는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에게 일족의 영지를 공격받은 것을 계기로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 훗날의 우에스기 켄신)에게 도움을 받고, 카와나카지마 전투(川中島の戦い)를 계기로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